OMM 역사
오멜버니 & 마이어스의 역사는 스물여섯 살 헨리 오멜버니 (Henry O’Melveny)와 서른두 살 잭슨 그레이브스 (Jackson Graves)가 1885년 1월 2일 설립한 작은 법률사무소인 그레이브스 & 오멜버니 (Graves & O’Melveny)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그 때는 먼지가 날리는 목장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불과했던 로스앤젤레스가 번화한 대도시로 탈바꿈하려는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1939년 오멜버니 & 마이어스 (O’Melveny & Myers)라는 현재 이름으로 바꾸기 전까지 아홉 번 사무실 이름을 바꾸었지만, 오멜버니 (O’Melveny)라는 이름은 계속 유지해 왔습니다. 이렇게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장 오래된 법률사무소라는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오멜버니 & 마이어스는 변호사 단 두 명으로 시작하여 변호사 약 700명을 보유한 국제적 로펌으로 성장해서 전세계 금융 및 정치의 중심 도시 열다섯 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습니다.
설립자들과 그 뒤를 이은 뛰어난 변호사들의 노력을 통하여 오멜버니 & 마이어스는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높은 명성을 얻었고,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꿈과 희망은 오늘날까지 오멜버니 문화 속에서 살아 꿈틀대고 있습니다. 오멜버니는 항상 고객 서비스에 초점을 두고, 최고를 지향하는 한편, 사회적 책임도 다해 왔습니다. 13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오멜버니는 고객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고객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고객들이 사업 목표를 달성하는 데 이바지하는 진정한 동반자가 되어 법률 자문을 제공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업무에 임했으며 이런 의지는 지금까지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또한 미국 국무장관 같은 공직에서 봉사한 경력으로 더 잘 알려진 고 워런 크리스토퍼 (Warren Christopher) 전 회장은 뛰어난 지도력으로 오멜버니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사회봉사 활동을 활발히 하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는 2011년 3월 18일 세상을 떠났지만, “하나의 오멜버니”로서 함께 협력하고 노력해 가려는 저희 모두에게 여전히 강한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1885년: 그레이브스 & 오멜버니로 설립
헨리 오멜버니 (Henry O’Melveny)는 로스앤젤레스가 작은 서부개척 마을에서 주요 대도시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1900년대 초: 수로 사업을 위한 법률자문을 하며 로스앤젤레스의 성장에 이바지함
윌리엄 커크호프라는 사업가와 그의 전력회사, 가스 회사를 약 20년 동안 자문하면서, 오멜버니는 천연가스화력발전과 수력 발전을 통해 로스앤젤레스에 전력을 공급하는 사업을 가능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1930 년대: 할리우드의 황금 시대에 방송연예 분야 법률자문 시작
빙 크로스비와 같은 일류 배우와 컬럼비아 영화사를 대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39년: 오멜버니 & 마이어스 (O’Melveny & Myers)로 개칭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장으로 일하다가 오멜버니에 합류한 루이스 마이어스 (Louis W. Myers)는 항소법원 소송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미국 대법원에서 NLRB v. Mackay Radio 와 같은 중요한 사건을 처리하고, 사건 90 %에서 승소하면서 걸출한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1940년대: 방위 산업체를 대리
제2차 세계 대전 중 오멜버니는 주요 방위 산업체인 Lockheed, Northrop, 그리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을 대리하였습니다.
1950년: 워런 크리스토퍼, 오멜버니 합류
향후 미국 국무장관이 된 워런 크리스토퍼가 오멜버니에 합류하였습니다. 그는 회장으로서 오멜버니를 이끌기도 하였는데, 그는 오멜버니가 열려있고, 자신을 매우 환영해 주는 분위기였다고 당시를 회고하였습니다.
1950년대: 프로 야구 구단 다저스의 이전을 협상
워터 오말리는 브루클린에 있던 다저스 구단을 로스앤젤레스로 이전하는 계약에 관한 분쟁에서 오멜버니를 선임하였는데, 이 사건은 다저스 스타디움의 건설을 허용하는 대법원의 판결까지 이어졌습니다.
1970년: 센추리 시티(Century City) 사무소 개설
센추리 시티가 20 세기 폭스 영화사의 촬영장에서 업무와 상업 중심지로 발전하는 가운데 오멜버니는 고객에게 더 나은 자문을 제공하기 위해 센츄리 시티 사무소를 설립하였습니다.
1970년대: 알래스카 횡단 송유관 법률자문
알래스카 횡단 송유관에 관한 법률자문을 시작했으며, 400마일 길이의 송유관에 쓰인 보호 테이프의 결함으로 인한 4백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Alyeska Pipeline사를 대리해서 제기하였습니다.
1976년: 워싱턴 DC 사무소 설립
워싱턴 DC 사무소 변호사의 대부분은 정부의 고위직에서 일하거나, 또는 지역 사회, 교육단체, 공익단체의 변호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습니다.
1977년: 전 미국 교통부 장관 윌리엄 콜맨 (William T. Coleman, Jr.) 합류
콜맨 변호사는 루이스 마이어 주 대법원장 이후 50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에서 영입한 파트너이자, 최초의 흑인파트너입니다.
1979년: 뉴포트 비치 (Newport Beach) 사무소 개설
뉴포트 비치 사무소는 생명과학, 의료기술 분야 자문을 중점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1983년: 뉴욕 사무소 설립
타임스 스퀘어 중심에 위치한 뉴욕 사무소는 선도적이고 선진적 고객들에게 자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석면 소송 대리
많은 석면 제조업체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오멜버니는 INA (현재 CIGNA)를 대리하였습니다. 이 소송은 석면 소송들 가운데 가장 크고 대표적인 소송으로 꼽힙니다. 수년간 소송을 진행한 뒤에 오멜버니는 화해협상에서 INA를 자문하고, 이정표로 기억되는 웰링턴 협상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1986년: 런던 사무소 개설
런던 사무소는 유명한 사모 펀드와 금융기관, 기업을 고객으로 대리하고 있습니다.
1987년: 도쿄 사무소 설립
도쿄 사무실에는 일본 변호사도 일하고 있어서, 일본과 외국 고객을 위하여 미국법과 일본법에 관한 법률자문을 함께 제공하고 있습니다.
1988년: 샌프란시스코 사무소 개설
샌프란시스코 사무소 변호사들은 첨단기술 회사와 선도적인 금융기관인 고객들이 사업을 운영하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포괄적 접근방식으로 돕고 있습니다.
1994년: 홍콩 사무소 설립
홍콩 사무소 변호사들은 미국법과 홍콩법에 관한 법률자문을 제공하며, 대부분이 영어와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역사적인 공공사업에 이바지
Alameda Corridor 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가장 큰 항구 두 개를 대륙간 철도망과 이어주는 고속 화물철도 사업이 있었습니다. 오멜버니는 그 사업에서 롱비치시, 로스앤젤레스시, 그리고 그 두 시가 공동으로 설립한 Alameda Corridor 회사를 대리하였습니다. 길이는 20 마일, 사업비는 24억 달러에 이르는 이 사업은 현재까지 미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공공사업의 하나로 꼽힙니다.
1996년: 상하이 사무소 개설
상하이 사무소는 상하이에 있는 가장 크고 오래된 국제 로펌 사무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2000년대: 엑손을 대리해서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승소
발데즈 석유 유출 사건에서 엑손 모빌을 대리한 오멜버니는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이 승소로써 징벌적 손해배상 50억 달러 가운데 45억 달러를 감액 받았고, 해상법 영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의 새로운 기준이 세워졌습니다.
2001년: 실리콘밸리 사무소 설립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Sand Hill Road의 정상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오멜버니 변호사들은 기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업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해서 매 순간과 단계에서 첨단기술 회사와 투자자들에게 법률자문을 제공합니다.
2003년: 베이징 사무소 개설
오멜버니는 중국 본토에 최초로 사무소를 개설한 미국 로펌 가운데 하나입니다.
2004년: 브뤼셀 사무소 설립
오멜버니의 브뤼셀 사무소는 고객들이 EU와 EU 회원국들의 경쟁법, 무역규제, 산업규제를 헤치고 순항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2008년: 싱가포르 사무소 개설
오멜버니는 싱가포르 사무소를 통해서 동남아 지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기업거래와 분쟁에 관하여 고객이 필요로 하는 법률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2012년: 서울 사무소 열어
오멜버니는 반독점 조사, 특허 소송, 인수 합병에서 고객들을 대리하며, 한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국제 로펌 가운데 하나입니다.